2023.01.06 - [역사 이야기] - 선사시대의 문화(1) - 구석기
신석기시대의 시작은 빙하기가 끝나면서 기온이 상승하여 현재의 생태계와 비슷한 조건이 마련되어 시작되었다고 본다. 이로 인해 수렵 생활에서 농경과 목축 생활로 전환되었고, 그러한 전환 때문에 신석기 문화를 '원시농경문화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신석기시대의 문화 중 대표되는 것은 토기와 간석기, 그리고 정착생활이다. 이 중에서 토기의 등장은 저장과 재생산의 의미를 지니며 정착 생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반도의 경우 토기의 출현을 기점으로 신석기시대의 개시를 설정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약 1만 년 전부터 기원전 2,000~1,500년 무렵까지를 신석기시대로 보고 있다.
한반도에서 출토된 가장 이른 시기의 신석기 토기는 20세기 중반까지는 빗살무늬 토기인 줄 알았지만 1994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서 출토된 토기의 연대가 1만 년 전으로 검출되었다. 이 토기의 이름은 유적의 이름을 따서 '고산리식 토기'로 명명되었다. 이 토기는 식물의 줄기 혹은 잎을 점토와 함께 반죽하여 만든 것으로 토기를 구울 때 식물은 타 없어지지만 그 줄기의 흔적이 토기 내외면뿐 아니라 속심에도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토기는 한반도에서는 알려진 바 없는 것으로 신석기시대 초기의 고토기로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신석기 전기 유적지는 함경북도 웅기 굴포리 서포항,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의 영선동, 동삼동을 비롯한 한반도 동부지역이 대부분인데, 여기서 출토된 토기는 민무늬거라 아가리 부분에 융기문이 장식되어 있다.
원래는 양양 오산리 유적이 제일 오래된 식석기시대 유적으로 알려져 왔지만 제주 고산리 유적이 발견되면서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제주 고산리 유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들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전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주거지 아래층에는 융기문토기, 압날문토기가 가운데층에서는 민무늬토기가, 그리고 위층에서는 한반도 중서부지방의 대표적인 유물인 빗살무늬토기가 각각 출토되어 신석기시대 전후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유적이다.
신석기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황해도 궁산리, 서울 암사동 등 서부지역의 유적이 있다. 여기서 출토된 토기는 뾰족한 빗살무늬 토기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빗살무늬 토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30cm 정도의 구멍을 파고 주거지 근처에 원추형이 되도록 기둥을 세워 지붕을 얹은 움집에서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유적을 발굴하면 이러한 집터가 몇 십 개까지 있는 곳도 볼 수 있어 당시 사람들은 수십 명씩 무리를 이루어 공동체 생활을 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일부 집터에서는 그물추가 다량 출토되어 분업화되어 있다고도 추측할 수 있다.
이외에도 신석기 유적지 중 대표되는 것 중 하나로 패총도 빼놓을 수가 없다. 조개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이는 사람들이 버린 조개들의 껍질이 쌓여서 무덤처럼 만들어진 것을 말한다. 조개껍질이 석회질로 이루어져 있어 그 안에 토기나 석기, 짐승뼈 등이 잘 보전되어 있다고 한다.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패총으로는 부산 동삼동 패총, 통영 연대도 패총 등이 있는데 이러한 것을 토대로 근처에 거주지가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농경에 관하여 알아보겠다. 식석기시대의 생계수단은 고기잡이와 사냥, 식물 채집이었지만 신석기시대 중기부터 농업이 시작되었다고 본다. 한반도의 중서부에서는 신석기시대 중기에 조와 피 등의 잡곡을 재배한 것으로 보이고, 부산 동삼동에서는 조와 기장, 옥천 대천리에서는 쌀과 보리, 밀, 조, 창녕 비봉리에서는 조 농사를 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초기 농경단계에는 조와 기장이 중심적으로 재배되었다고 추정된다. 특히 대천리에서는 쌀이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에 한반도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농경은 수렵 채집 외 부수적 생계 수단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며, 그 시대 사람들은 아마 조그마한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강가의 퇴적된 지역을 이용해 경작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곡물의 저장은 토기를 사용하거나 저장구덩이를 사용하였고 갈돌, 갈판 등은 조리도구로 이용도가 높아져 크기가 커지고 수가 증가하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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