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사시대라 함은 보통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까지의 시기를 뜻한다. 인류가 나타난 시점은 지금으로부터 약 450만 년 전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발견된 인류 화석 가운데 가장 오래된 인류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약 38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이 가장 오래된 화석으로 추정된다. 이후 인류는 손재주가 있는 사람을 뜻하는 호모하빌리스, 직립보행을 하는 호모에렉투스를 거쳐 지혜가 있는 사람의 호모사피엔스 그리고 마지 벅으로 약 4만 년 전 현생 인류의 직접적인 조상인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가 출현하였다. 대략 250만 년 전부터 현생인류와 직계 조상이 나타났다고 추정되며, 이전 시기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 비해 두뇌용량이 증가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구석기시대는 여러 차례의 간빙기와 빙하기를 거치면서 주기적 이러 환경이 변화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로 빙하기에 서식하던 동물 화석과 따뜻한 기후에 살던 동물의 화석이 동시에 발견되기도 하는 것이 큰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반도는 약 70만 년 전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이라고 추정된다. 한반도에서 최초로 조사된 구석기 유적은 1930년대에 조사한 함격북도 온성군 동관진 유적이다. 그러나 구석기문화에 대한 이해는 늦어서 해방 후 북한의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 유적과 남한의 충청남도 공주시 석장리 유적, 두 군데의 유적의 발굴을 통해 한반도 내에서 구석기시대의 존재를 확고하게 밝히게 되었다.
북한에서는 검은모루 동굴, 평양시 용곡리 동굴 등이 조사되었고, 남한에서는 제천 점말 동굴, 청원 두루봉 동굴, 연천 전곡리 유적, 단양 상시리 바위그늘 등 많은 구석기 유적이 발굴되었다. 그중 남한의 대표적인 구석기유적이자 대규모 석기 분포지인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는 동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문화가 확인되었고, 한국사 시험에 대표적인 문제로 공주 석장리 유적, 연천 전곡리 유적의 위치를 물어보기도 한다.
또한 연천 전곡리 주먹도끼는 1977년 동두천 주둔 미 2사단 공군부대에 근무했던 그렉 보웬이 여자 친구랑 같이 한탄강 유원지에 놀러갔다가 특이하게 생긴 돌멩이를 주웠고, 이를 당시 서울대 박물관장이던 김원룡 교수 등 전문가들에게 알리니 주먹도끼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렉은 군 입대 전에 고고학을 공부하여 주먹도끼인지 알았다고 한다.
그가 발견한 주먹도끼가 바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로 1977년까지 뫼비우스 학설에서 세계의 전기구석기 문화를 아슐리안형 주먹도끼 무노하와 찍개 문화로 나누고 있었는데, 당시까지 약 14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처음 만들어진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유럽, 서아시아, 인도 등지에서만 발견되었고, 동아시아에서는 찍개만 나왔기 때문이었다. 아슐리안형 주먹도끼는 찍개에 비해 상당한 가공과정을 거쳐야 제작할 수 있는 것으로 구석기시대부터 동아시아가 유럽보다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었다고 은연중에 하던 생각을 깰 수 있는 계기가 된 고고학적으로 중요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의 대표적인 유물은 여러 종류의 석기라고 할 수 있다.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돌멩이를 내리쳐서 깨뜨리거나 한쪽 끝을 떼어낸 찍개, 한 면은 둥글게 다듬고 한 면은 뾰족하게 만든 주먹도끼, 가로날도끼, 긁개, 밀개, 찌르개, 슴베찌르개 등 여러 석기를 만들어서 실생활에 사용했다. 이러한 뗀석기들은 자연적인 돌과 구분하기 어렵지만,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떼어낸 흔적이 있고, 구석기시대의 퇴적층에서 석기가 출토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구분이 가능하다.
한반도 구석기 유적에서 석기 말고 사람화석이 발견되기도 했는데 덕천의 승리산사람 화석, 평양의 만달사람 화석, 역포사람 화석, 용곡사람 화석, 흥수아이 화석 등이 출토되었다.
시대순으로 보면 역포사람-용곡사람-승리산사람-만달사람-흥수아이 순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구석기인들은 대체로 동굴이나 바위그늘에서 생활하여 공주 석장리에서는 집터가 발견되었고, 대전 용호동에서는 화덕자리가 발굴되기도 하였으나 집터의 흔적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아직 비판적인 시각 또한 존재한다. 구석기인들은 단체 생활을 하며 식물채집, 물고기나 동물 사냥으로 생계를 해결하였다고 추정된다. 후기 구석기시대 유럽에서는 산양이나 순록 등의 동물을 사냥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우리나라는 식물자원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였을 가능성이 커서 한반도의 경우 사냥보다는 식물채집을 통해 생계를 해결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들은 한 곳에서 안정적으로 식량을 수급하지 못하였으므로 정착 생활이 아닌 이동 생활을 하였다. 한편 약 50만 년 전부터 불을 사용하게 되어 좀 더 추운 지역에서 살게 되었고, 음식물을 익혀 먹어 수명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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