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06 - [역사 이야기] - 선사시대의 문화(1) - 구석기
청동기시대는 문명이 시작되는 단계로 제대로 된 농경사회의 시작, 민무늬토기의 사용, 청동기의 등장, 고인돌 등이 가장 큰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청동기시대가 시작된 배경으로는 새로운 토기 및 석기를 사용했던 중국 동북지방과 한반도 서북 지역의 영향 그리고 농경기술의 도입이 중요한 계기로 생각된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민족의 기원과 형성에도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대략 B.C 1,500년~ B.C 1,00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진주 상촌리, 정선 아우라지 등에서 발굴된 각목돌대문토기를 B.C 1,500년 정도로 생각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조기 청동기시대를 설정한 논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고 한다.
각목돌대문토기를 시작으로, 청동기시대에는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와 형태가 다른 민무늬토기가 등장한다. 아마 대부분 일반인들도 미송리형 토기 혹은 충남 부여 송국리 출토 토기를 보면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자주 봐서 익숙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청동기시대 후기에 본격적으로 청동기가 등장했다. 이것들은 무기와 의례 때 사용하는 도구인 의기(儀器)의 비중이 높은데, 초기에는 무기의 비중이 높고, 후기에는 의기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비파형 동검이 이 시대 가장 대표적인 유물로, 그 형태가 악기인 비파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국 요령 지방과 한반도 남부에서 많이 확인되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세형동검으로 변화하는데, 비파형 동검은 요령 지역과 한반도에 걸쳐 있었지만, 세형동검은 한반도 내부에서 주로 출토되어 한국식 동검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이외에 한반도에서 출토된 의기(儀器)로는 청동방울과 청동거울 및 검파형 동기, 방패형 동기, 나팔형 동기 등이 있는데, 여기에는 기하문을 비롯해서 사슴, 손, 고사리무늬 등이 새겨져 있는 경우도 있다.
2023.01.07 - [역사 이야기] - 선사시대의 문화(2) - 신석기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으로는 서울 역삼동, 화천 용암리 유적 등이 있으며, 중기와 후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는 부여 송국리 유적이 있다. 송국리 유적은 원형의 집터 가운데에 원형의 구덩이가 있는 송국리형 주거지와 납작 바닥의 긴 달걀형 몸체, 송국리형 토기 등 청동기시대의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 한국의 대표적인 청동기시대 유적이라고 볼 수 있다.
청동기시대 전기에는 방형, 장방형, 세장방형의 대형주거지로 공동생활공간이 큰 것에 비해 후기에는 방형 또는 원형의 소형 주거지로 크기가 작아진 것이 전기와 후기의 대표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때의 주거지는 하천이나 해안에서 가까운 구릉에 위치하며 작은 야산을 뒤로하고 앞에는 하천이 흐르는 배산임수의 주거지를 선택한 것으로 보아 현재와 비슷한 입지에 거주를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집터의 수도 신석기시대에 비하여 많이 늘었는데, 생산력 증가에 따른 생계 안정에 의한 인구 증가가 원인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농경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농경사회가 시작된 것은 청동기시대로 본다. 실제로 유적에서 밭으로 추정되는 터가 많이 나왔고 진주 대평리 유적에서는 고랑과 이랑으로 이루어진 형태의 밭 또한 나왔다. 대표적으로 출토되는 곡물은 조, 피, 수수 등의 밭작물과 벼도 심심찮게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괭이나 반달돌칼, 돌낫, 갈돌, 갈판 등 모두 농경과 관련된 도구로 신석기시대보다 더 다양한 종류의 농경 관련 유물과 더 많은 수의 유물이 발굴되었다.
대전 괴정동 출토 농경문 청동기는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보관을 하고 있는데 이는 농업활동이 원활히 진행되기를 바라는 내용의 의식용 물건이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유물에는 밭을 일구는 모습과 괭이로 땅을 일구는 모습, 수확된 농산물을 토기에 보관하는 모습 등 당시의 농경 생활이 묘사되어 있고, 파손된 부분은 '씨를 뿌리는 모습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이 있다.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 형식은 고인돌과 돌널무덤이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3만 기를 넘는다고 알려져 있다. 축조 방식에 따라 북방식 고인돌과 바둑판식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로 구분되어 왔지만, 이외에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도 다수 확인된다.
청동기시대는 농경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전문적 제작 기술을 필요로 하는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집단 간 경제적 차이가 심해지고 고인돌의 규모와 그곳에서 발굴된 청동기나 석검 등을 보았을 때 청동기부터 계급사회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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