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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하는 Hyun
역사 이야기

[조선/역사]조선시대에 코끼리가 있었다?

by 공부하는 Hyun 2024.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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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 코끼리가 들어오다.

 

 여러분은 혹시 조선 시대에 코끼리가 있었다는 것을 아시나요? 안 믿기시죠? 하지만 진짜로 코끼리가 있었습니다! 태종실록에 그에 관한 기록이 적혀있죠.

 일본 국왕(日本國王) 원의지(源義持)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코끼리를 바쳤으니, 코끼리는 우리나라에 일찍이 없었던 것이다. 명하여 이것을 사복시(司僕寺)에서 기르게 하니, 날마다 콩 4·5두(斗)씩을 소비하였다.

- 태종실록 21권, 태종 11년 2월 22일 계축 2번째 기사1411년 명 영락(永樂) 9년

 

 저도 처음에 역사 공부할 때 이 사실을 듣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조선시대 후기면 몰라도 초기에는 물류가 지금만큼 발달하지도 않았을 텐데 일본에는 어떻게 있었지라는 생각부터 조선도 마구간은 있어도 동물원 같은 시설은 없었을 텐데 어떻게 키웠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기하더라고요. 일본은 인도네시아에서 선물 받은 것을 조선에 줬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문제는 기록에서 보이듯이 식비가 많이 들었죠.

 

 인도나 몽골에서는 건축이나 전투용으로 코끼리를 썼는데 조선에서는 처음 보는 동물이 밥만 축내는 상황이니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이 많이 되었겠죠. 선물 받은 걸 맘대로 죽이기도 애매하고, 다시 돌려줄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계속 키우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사건이 터졌는데 무슨 사건이었을까요?

 

코끼리를 유배 보내다?

 바로 선물 받은 코끼리를 유배를 보내 버린 것입니다. 아무리 밥만 축내는 가축이었다고 하더라도 유배는 좀 심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유배를 가도 밥값은 똑같을 거잖아요? 당연히 밥값의 문제 때문에 유배를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 때문이냐고요? 다시 태종실록을 한 번 보겠습니다!

 

전 공조 전서(工曹典書) 이우가 죽었다. 처음에 일본 국왕(日本國王)이 사신을 보내어 순상(馴象)을 바치므로 3 군부(三軍府)에서 기르도록 명했다. 이우가 기이한 짐승이라 하여 가보고, 그 꼴이 추함을 비웃고 침을 뱉었는데, 코끼리가 노하여 밟아 죽였다.
-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12월 10일 신유 6번째 기사 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바로 사람을 죽여서 유배를 갔습니다. 선물 받은 동물이지만 쓰려고 하니 쓸 데도 없고, 사람을 다치거나 죽이게까지 하니 다음 해에 신하들이 상소를 올렸다고 합니다. 그 상소 내용도 한 번 봐볼까요?

 

 

코끼리[象]를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도록 명하였다. 병조 판서 유정현(柳廷顯)이 진언(進言)하였다.

"일본 나라에서 바친 바, 길들인 코끼리는 이미 성상의 완호(玩好)하는 물건도 아니요, 또한 나라에 이익도 없습니다. 두 사람을 다쳤는데, 만약 법으로 논한다면 사람을 죽인 것은 죽이는 것으로 마땅합니다. 또 일 년에 먹이는 꼴은 콩이 거의 수백 석에 이르니, 청컨대, 주공(周公)이 코뿔소와 코끼리를 몰아낸 고사(故事)를 본받아 전라도의 해도(海島)에 두소서."

임금이 웃으면서 그대로 따랐다.

- 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11월 5일 신사 4번째 기사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1년 후의 일이긴 했지만 결국 도움이 안 되는 동물이라 판단이 되니 결국 유배를 보내버린 것이죠.  여기서 해도는 지금 여수에 있는 장도(노루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선물로 받은 동물이지만 쓸모는 없이 사람에게 위협도 되니 어떻게 보면 계륵 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코끼리인 것이죠. 이 조선시대의 골칫덩이가 되어버린 코끼리는 세종 때도 코끼리를 관리하는 종을 죽였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기록이 없지만 나이도 있기 때문에 금방 죽지 않았을까 합니다.

 

 오늘은 역사적인 팩트도 좋지만 가끔 환기시키기 위해 사람들이 잘 모를 수도 있는 이야기를 들고 왔습니다. 다음에도 가끔 이런 알아두면 쓸데없는 역사적 지식들을 가져와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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