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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이야기

[고려/한국사] 고려의 정치와 각종 제도

by 공부하는 Hyun 2024.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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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 [역사 이야기] - [고려/한국사] 고려의 성립

 

[고려/한국사] 고려의 성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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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시대에는 당의 중서성 · 문하성 · 상서성 3성 중에서 중서성과 문하성을 중서문하성으로 통합시켰고, 이, 병, 호, 형, 예, 공의 부서 6개가 있는  2성 6부제를 사용함으로써 당과의 차이가 있었습니다. 중서문하성은 고려 시대 최고의 정치기관으로 나라의 정책과 임금의 명령을 예하 기관에 전달하는 일을 했습니다. 상서성과 6부는 위에서 명령이 내려오면 그 명령을 각 분야에 맞게 집행하는 일을 했습니다.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은 당제를 모방했지만 중추원은 송나라의 추밀원에서 가져왔습니다. 중추원은 상 · 하 이중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상층은 추밀, 하층은 승선으로 불렸습니다. 이 중 추밀은 재상으로서 국정을 총괄하였고, 승선은 왕명의 출납을 맡았습니다.

 

 이외에는 다른 나라와는 구분되는 도병마사와 식목도감이라는 기구가 있었는데, 도병마사는 국방, 군사문제를 의논하는 기구였으며 식목도감은 대내적인 법제와 격식을 관장하는 기구였습니다. 이 회의에는 중서문화성을 비롯한 주요 관청의 높은 관리들이 참석했고, 만장일치제를 통해 사안이 결정되었습니다. 도병마사는 무신 정권 때는 제 기능을 못하다가 몽골의 침입 이후에 다시 강화되었고, 원의 간섭을 받으면서 도평의사사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후에 조선에 이르러서는 의정부로 개편됩니다.

 

 고려의 교육제도

 

 고려의 교육은 유교적 소양을 쌓기 위한 것이 주였으며 국자감, 향교, 사학, 12도 등이 있었습니다. 국자감은 지금으로 치면 국립대학이라고 볼 수 있는데, 국자학, 태학, 사문학 등의 유학뿐만 아니라 서학, 산학, 율학 등 기술학부 또한 있었습니다. 유학은 7품 이상 관리의 자손들을 위해 교육을 하였고, 8품 이하의 관리의 자손들을 위해 기술학부 교육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유학을 배운 것도 대부분 관리가 되기 위해서였고, 관리 임용을 위해서 고려는 과거제도와 음서 제도를 시행하였습니다. 과거는 예비고시를 거친 후 본고시인 예부시를 또 치렀습니다. 또 시험 과목에 따라 문예와 유학에 능한 자를 뽑는 시험으로 양대업이라고도 불리는 제술업 · 명경업 2가지와 의학, 천문, 지리, 법률 등을 시험하여 기술관을 뽑는 잡업이라는 시험이 있었습니다.

 

 음서는 과거와 다르게 시험 성적이 아닌 속된 말로 인맥으로 관리를 선발하는 제도였습니다. 음서 제도로 추천받을 수 있는 대상은 5품 이상 관원의 자손으로 주로 실무와 관계없는 직종에 임명되었으나 관직에 일찍 진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관리로서는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의 지방제도

 

 기본적으로 고려의 지방제도는 왕경인 개성부와 경기 및 5도 양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도는 「고려사」를 보면 양광 · 경상 · 전라 · 서해 · 교주도를 말하는데 양광은 충남 교주도는 충북 일부와 강원도 일부를 포함한다고 보면 됩니다. 5도의 장관으로는 안찰사를 두어 순찰과 외관을 평가하는 업무를 맡게 하였습니다.

 

 양계는 북계와 동계로 나누어지는데 국경지대로 외부세력과 맞닿아 있다보니 안찰사 대신 병마사를 두었고, 그 아래 방어주를 설치하여 관리를 파견하였습니다. 또한 전국을 몇 개의 행정구획으로 나누고 여기에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을 파견하여 다스리던 중앙집권적 지방행정 제도인 군현제를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향 · 부곡 · 소 등 지방에는 지방관과 함께 향리를 파견해 군현과 촌락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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