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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부하는 Hyun

신라4

[남북국시대 대외관계/역사] 통일신라의 대외관계 통일신라 대에는 당, 일본, 발해, 서역 등 다양한 세력들과 활발하게 교류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통일신라 이전 신라와 가장 밀접한 관계였던 국가는 나당연합을 했던 당나라였습니다. 신라와 당이 교류를 하다가 군사동맹을 맺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후 서로 한반도를 갖기 위해 나당전쟁 전까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나당전쟁이 신라의 승리로 끝난 후, 문무왕과 당 고종이 사망하자 불화는 점차 사그라들었습니다. 신라는 통일 후에도 당과도 전쟁을 하면서 전후복구 및 국가 체제의 정비가 필요했기에 당과 관계를 개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당 또한 중국 여사상 최초로 여인으로써 황제가 된 측천무후가 정통성을 확보하고 권력 안정을 위해 주변국들과 관계 개선을 적극적으로 해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았.. 2024. 1. 18.
한국사 - 남북국시대 신라의 삼국통일 660년에 나당연합은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설치하였고, 663년에는 신라를 계림주대도독부로 삼고 문무왕을 계림주대도독으로 임명하였다. 뿐만 아니라 668년에 고구려의 수도 평양성을 함락시킨 후 당은 고구려 땅에 안동도호부를 설치하여 그곳을 직접 통치하고자 하였다. 이로써 당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대동강 이남의 땅을 신라에게 넘겨주기로 한 약속을 파기하고 한반도 전체를 집어삼키려고 하였다. 이 같은 당의 정책 때문에 신라는 당과 나당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고구려 부흥운동을 지원하기도 하고, 사비성을 탈환 후 소부리주를 설치하여 백제의 옛 땅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게 되었다. 그 후 675년 메소성 전투와 676년 기벌포 전투에서 크게 승리함으로써 당군을 축출하고 대동강 이남을 차지하.. 2023. 9. 16.
삼국시대(3) - 신라의 문화 신라는 흔히 성골부터 6두품까지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겠지만 그것은 신분제인 골품제이고 관등은 17관등의 관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고구려, 백제와 마찬가지로 귀족들의 회의인 화백회의로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화백회의는 진골 출신인 대등들로 구성되고 수상격인 상대등을 의장으로 하며, 만장일치로 결정하는 전통이 있었다. 통일 이전 신라의 지방제도는 주 - 군 - 청으로 이루어졌고 각 주마다 군주가 파견되었다. 이러한 신라의 주는 군사조직과 연결되어 6주에 편성된 부대를 6정이라고 하며, 진골 출신의 장군이 지휘하였다. 신라의 골품제는 혈통에 등급을 두어 정치적으로나 일상생활에서에 차별을 두는 제도였다. 최고위 귀족은 오로지 왕족의 피만 있는 성골과 그 다음 왕족의 피가 섞인 진골, 그.. 2023. 9. 13.
삼국시대(1) - 삼국의 성립과 발전 2023.01.09 - [역사 이야기] - 한반도 초기국가의 형성에 대하여 - 고조선과 부여 한반도 초기국가의 형성에 대하여 - 고조선과 부여 2023.01.07 - [역사 이야기] - 선사시대의 문화(3) - 청동기 선사시대의 문화(3) - 청동기 2023.01.06 - [역사 이야기] - 선사시대의 문화(1) - 구석기 선사시대의 문화(1) - 구석기 선사시대라 함은 보통 구석 hyeon00.tistory.com 일반적으로 삼국시대라고 하면 고구려와 신라, 백제 3개의 고대국가가 형성된 시기로 제대로 된 철기문화가 형성된 시기라고 본다. 가야를 포함해 사국시대가 아닌 가야를 뺀 삼국시대라고 불리는 이유는 고대국가라고 보는 것보다는 연맹국가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삼국시대라고 부른다. 고구려.. 2023. 1. 11.